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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역대 수상작

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실버스토리 수상작 [나의 특별한 두 번째 인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284
첨부파일



나의 특별한 두 번째 인생



서시내







2018.08.31.
 평범했던 나의 일상이 아주 특별한, 남들보단 조금 다른 일상으로 바뀐 날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던 나는 유방초음파에서 이상소견이 있어 정밀검사와 조직검사 후 그날 최종 왼쪽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동료가 유방암으로 수술, 항암을 하는 것을 지켜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일 뿐, 나에게 암이란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바로 병휴직을 내고 서울 병원으로 가서 CT, 뼈스캔 등등 관련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차 안에서 생각해 보니 1년 전부터 왼쪽 어깨가 자주 아팠던 것이 떠올랐다. 어깨를 많이 사용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하고 도수치료만 해왔었다. 또 왼쪽 팔에 긴 형태의 띠를 두르며 피부의 발적이 자주 있었는데 암이란 진단을 받으니 모두 다 그것과 연관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암 타입이 순한 암이고 예후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CT사진을 넘겨보던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 폐에 뭐가 보이네요."

 청천벽력이었다. 이미 림프절로 전이가 된 상황이라 다른 장기로 전이만 되지 않았기를 기도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폐 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 상황을 이야기하고 언니와 함께 또 예약된 다른 병원으로 향했지만 나는 내 삶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두 번째로 간 병원 의사 선생님도 CT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에서는 폐 전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제부터 치료의 목적은 완치가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전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 연장이 목적입니다." 생명 연장이라니.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다음날 추가 적으로 다른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의사소견에 따라 나는 언니와 서울에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고 남편도 급하게 서울로 오기로 했다. 남편을 기다리면서 저녁을 먹기 위해서 언니랑 강남역 근처를 갔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면서도 나는 앞으로 저렇게 웃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을까? 내 딸과 아들이 저렇게 클 정도로 나는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와 동시에 36년 동안 나의 삶이 이래저래 조각처럼 떠올랐다 부서졌다 하였다. 언니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런저런 농담을 건넸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강남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 언니와 헤어진 후 남편을 만났다. 병원 근처 숙소에서 우리는 밤새 펑펑 울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그런 병에 걸릴 수가 있나. 하나님께서 뭐가 급하시다고 이리 빨리 데리고 가시려 하나." 남편은 넋두리를 하며 눈물을 보였고 나는 그저 앞으로 내 삶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을지, 항암을 하면서 계속 삶을 연장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남겨질 가족들에게 미안하여 울었다. 울다 지쳐서도 우리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아침 7시가 되자마자 급히 병원으로 향했고 남은 검사를 받고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와서 검사결과를 보러 가는 일주일 동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족들은 나의 암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엄마가 출근도 하지 않고 등하원을 시켜주는 즐거움에 행복해했고 나는 그런 모습을 안쓰러워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후, 모든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남편과 함께 다시 서울로 가는 KTX를 탔다. 의사 선생님께서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유방암에서 전이된 것인지, 폐에서 따로 생긴 폐원발암인지 알 수가 없으니 폐수술을 해봐야 알겠다고 바로 입원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유방암, 폐암 이렇게 암이 따로 2개 있는 것이 그나마 나에게 좋은 것이라며 수술해서 알아보자고 하셨다.나는 바로 입원을 했고 그 다음 날 흉부외과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받았다.

 ​ 나를 비롯한 우리가족, 우리교회, 나의 지인들은 모두 유방암, 폐암 암이 2개이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암이 2개가 되는 것이 희망이었고 어두운 내 삶에 힘이 될 한 줄기 빛이었다. 수술하러 수술준비실에 누워있는데 천장에 성경 구절이 써 있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의 됨이라.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이사야41장10절)'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나는 하염없이 소리 없이 울었다. 마취과 의사선생님께서 손을 꼭 잡아주시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말과 오늘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일어나라고 나를 깨웠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암이래요?"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옆구리에 엄청 큰 배액관을 달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만난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술실 급속 조직검사결과 암으로 나와서 우중엽을 다 절제하였습니다. 최종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려봅시다." 라고 이야기하였고 우리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나는 그 희망을 붙잡고 하루빨리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배액관을 빨리 빼기 위해 나는 남편과 병실 복도를 부지런히 걸어 다녔고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공 올리는 기구도 열심히 불었다. 또 10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폐 수술 최종조직검사결과를 듣는 날, 나는 폐암 1기라는 또 새로운 암 환자가 되었다. 평생 한 번 걸리기도 힘든 암을 두 개나 걸렸다니……그런데 모두들 나에게 다행이다. 잘됐다. 하며 축하해주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고, 유방암 덕분에 나는 어쩌면 모르고 지나갔을 폐암을 치료하게 된 것이다. 희망이 생긴 나는 다시 유방외과 의사를 만났고 림프절 전이가 되었으니 선항암을 먼저 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입원하여 캐모포트를 삽입하고 항암8차 중 1차를 시행하게 되었다.

 ​ 항암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내 몸을 맘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요양병원 앞 저수지 산책도, 어떨 때는 병원 내 짧은 산책로도 몸이 힘들어 나갈 수 없었던 날이 많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 병원에 오는 아이들도 안아주기가 벅찼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졌던 머리카락. 미용실에서 남은 머리카락을 다 밀고 오던 날 나는 다짐하였다. 항암이 끝나고 나면 다시 날 머리카락과 다시 건강해질 나의 모습을 이제는 마음껏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항암을 하러 병원에 입원을 하는 날 밤이면 가끔 방송이 들렸다. 어디병동, 몇 호실, 몇 번째 환자, 코드블루. 누군가의 심장이 멎었다는 소리이다. 그 방송을 들을 때마다 아직 뛰고 있는 나의 심장과 그 소리에 반응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며 항암을 무사히 마쳤다. 나는 8번의 항암을 마치고 수술 전 검사에서 초음파와 MRI 상에 어떠한 암덩어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완전관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수술장에서는 2.5mm의 암덩어리와 5mm의 림프절 전이가 보여서 곽청술을 해야 했지만 나는 나의 삶이 더 특별한 삶, 더 벅찬 감동이 있는 삶으로 바뀌었음에 감사했다. 수술 2주 후 첫 진료에서 나는 겨드랑이 배액관을 뺄 수 있었고 방사선치료와 5년간 난소억제주사를 맞고 10년간 호르몬억제제를 먹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그리고 30번의 방사선치료가 끝난 후 마지막 유방외과 의사선생님을 만났을 때 내 몸에는 이제 그 어떤 암 덩어리도 없다는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암 투병 이후 나의 삶을 아주 특별하게 바뀌었다.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음에 감사하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등산을 하면서 들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너무 좋아서 등산을 즐겨하고 죽음에 대해 안일했던 나는 죽음에 대해 의연함을 갖게 되었고 그 어떤 상황도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흉부외과, 유방외과 검진을 해야 하는 암 생존자가 되었다. 머리가 조금씩 자라는 나에게 언니는 농담처럼 말했다.

 "사람이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이 36%라는데, 너는 2관암이니 18%의 확률 아냐. 넌 특별한 사람이다."

 언니의 말처럼 나는 특별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의 나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내 나이 36살에 두 개의 암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하지만 그 어떤 삶이 펼쳐지더라도 나를 더욱 아끼며 내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