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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브론즈스토리 수상작 [월선리에서 희망의 약속이 도착했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086
첨부파일



월선리에서 희망의 약속이 도착했습니다.



강정화







지난 2월 꽃을 시샘하여 오는 추위가 무안군 월선리에도 찾아왔다. 매년 오는 추위라 이번에도 왔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꽃샘추위에도 우리는 83명의 가족들과 끈끈하게 가족애로 똘똘 뭉쳐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 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고, 배우 '김애경' 의 특유의 콧소리가 닮은 예숙씨는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용인 들의 등교 준비에 정신없는 교사를 츤데레처럼 챙긴다.

"여~ 춥네잉. 사라엄마~ 겉옷 입으소~"

아침 7시 40분부터 8시까지 총 2대의 차량이 우리 시설로 오는데 추위도 모르고 근무를 하는 사라선생님이 예숙씨의 관점에는 추워보였나 무심코 겉옷을 챙겨주었다. 함께 1985년부터 함께 생활한 동지애로 뭉쳐진 그녀들은 나란히 서서 노란색 통학차량에 보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다. 예숙씨는 류사라 교사의 귀에 들리게 이야기 한다.

"사라엄마, 나도 학교 가고 싶어요.. "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나란히 서 있는 예숙씨의 온기 있는 손을 꼭 잡고...
"예숙씨~ 우리 빨리 치료하고 학교 등교합시다."

소소한 일상이 반복되는 하루였지만, 여성암 검사를 진행했는데 살을 뚫고 들어오는 꽃샘추위처럼 살과 마음을 에이는 결과가 불쑥 날아왔다. 예숙씨의 오른 가슴에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있는 덩어리가 림프절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 치료가 시급하다고 전해왔다. 지역 종합병원 외과에서는 원내 의료팀과 함께 2019년 2월 20일 화순 전남대학교 병원 내분비외과에 예약을 했고, 치료 절차를 천천히 진행했다. 원내에 재직 중인 간호사는 2명 중 예숙씨가 평소 "예쁘니" 라고 부르는 백지현 간호사를 간택하였고, 화순으로 동행했다. 내분비외과 윤정한 교수님과 의미 있는 첫 만남이었다. 지역병원에서 검사한 결과와 같으며 을 타고 암세포가 예숙씨의 몸 안에 함께 존재하며 수술이 필요하며 유방암 3기말에서 4기초에 진입한다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설명했다.

예숙씨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은 케이스였고, 부모의 경제적인 이유로 1985년 목포장애인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겉모습은 50대 후반의 모습이지만 대화를 해보면 냉소적인 듯 보이지만 세상의 두려움에 가득 찬 사춘기의 소녀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나이를 물으면 예숙씨는 머뭇거리다 "나는 14살이에요" 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사춘기 발달을 하고 있는 예숙씨에게 평소 예쁘니라고 불리우는 백지현 간호사는 교수님의 치료가 필요하는 말을 천천히 눈높이에 맞게 설명했다.

"예숙씨~ 오른 쪽 가슴에 나쁜 병균이 들어와서 예숙씨를 아프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치료를 해야해요~ 빨간약도 바르고 그 나쁜 병균을 없애야 해요."

마지막엔 모든 부분을 수용하듯 "네~" 라고 대답하며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물었다. 당분간 학교에 가지 않고 병균을 소멸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무감보다, 자신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부분을 더 크게 받아 드렸다.

화순에서 백지현 간호사는 무안군 월선리로 유방절제술에 관한 진료 결과에 대해 전화 연락을 했다. 원내 김명숙 재활지원과장은 미리 작성해 놓은 위임장으로 무안군 보건소에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로 의료비를 신청했다. 예숙씨가 소지한 통장에는 장애연금을 유일하게 수입으로 수령하고 있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별 다른 수입이 없었다. 앞으로 계획에 있는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방암환자가 원내에서 발생된 사례는 2번째이다. 첫 번째 케이스는 상피내암 단계로 유방암으로 발전되기 전 유방 절제술을 시행하여 큰 무리는 없었지만, 예숙씨 케이스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급하게 목포장애인요양원 내에서 '소 사례회의' 를 실시했다. 각 전문가 집단 영양지원팀, 재활지원팀, 의료지원팀, 자원개발팀, 생활팀, 예숙씨가 그 자리에 함께했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의회의인지라 자신에게 이제 병이 왔으니 어제 먹던 유제품도 당분간 그 좋은 학교도 잠시 등교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에 그 말에 당황하고 겁이 났는지 모든 이야기에 "안 해!"라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예숙씨가 속한 사랑팀 내의 8명의 교사는 '잘 될거에요' 라는 희망이 깃든 마음으로 따뜻하게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독려했다. 예숙씨가 평소 좋아하는 과일, 의복 등을 서슴없이 선물하며 치료를 하자고 권유했다. 또한 예숙씨가 몇 년간 자신의 욕구로 선택한 신앙으로 수술 날까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함께했다.

수술 날이 다가오는 3월이었다. 매월 전화나 서신으로 담당교사가 김예숙씨의 부모님께 연락을 취하며 근황을 전달했지만 경제적으로 부양 능력이 부족하고 연세가 여든이 넘은 고령의 부모에게 몇 년간 얼굴을 보지 않은 딸의 유방암 투병 소식을 전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용인의 수술여부를 이야기하자 자신의 딸이 그렇게 무서운 병에 걸렸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라며 절망하시는 듯 하였다. 부모님께서는 화순 전대병원까지 이동이 불편하오니 수술동의서를 서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관의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시설이 있는 곳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곳은 병원을 지나쳐야 하는 1번국도 어느 곳이었고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입원 당일 김예숙씨의 부모님께서 서명해주시는 절차를 바탕으로 2019년 3월 12일 간절하게 바라던 우측 유방을 절제술을 시행하였다. 3시간인 넘는 수술실 앞에서 부모님과 의료팀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오신 의료진은 암세포를 제거하였지만 재발 염려가 50% 확률을 넘는다고 하였고, 재발을 15%까지 낮추기 위해 항함 화학 요법을 4월 3일부터 시작한다며 대안을 제시하였다. 수술이 끝나고 나온 입원하며 지난 몇 년간 만나 뵙지 못한 부모님이 옆에 계신 부분에 대해 조금 어색함이 들었는지 무덤덤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프지 않은지 묻는 대답에도 간단하게 "네" 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다. 첫 식사 시간 미음으로 시작하는데도 평소 먹성이 좋아, 어떤 음식도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수술의 여파로 식사 부진이 시작된 것이었다.

"예숙씨, 식사를 드셔요~"
"안 먹은당께, 비우 상해!!"
"그럼 다른 과일이라도 드실래요?"
"안해!"

비장애인도 몸이 좋지 않으면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생살을 찢어 암세포들을 뜯어내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어린아이의 감성을 갖고 표현도 서툰 예숙씨와 옆에서 간병을 하는 교사들의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퇴원을 마치고 친 어머니께서 축하선물로 새콤한 맛이 나는 요구르트와 쌀로 만든 절편을 1되를 해주셨다고 병원에 3주간 계시며 그리워했던 83명의 가족들을 보며 어머니의 이바지 음식 자랑을 하였다.

"엄마가 해줬어~ 나도 먹고 여기 애들도 먹으라고 했당께~"

고된 병상에서 힘든 몸을 이끌고 엄마가 이바지로 해준 떡을 가지고 오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가져 행복하신 듯 했다. 퇴원을 하고 암센터에서 먹어야 할 것, 먹지 말아야 할 것, 구분하여 종이에 식이요법을 적어주었다. 식이요법 종이를 토대로 원내 영양지원팀에서는 식사를 제공했다. 단백질이 풍부한 육질의 고기와 생선, 신선한 야채 등을 살짝 데치거나 구워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예숙씨 식사 하셔요, 오늘은 조금 더 드셔보셨음 좋겠어요."
"어우 역겨워~ 우웩!"

예숙씨는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뒤로 하고 역겹다고 모든게 귀찮다고 하였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드셔보시라고 권유했지만 예숙씨는 드시지 않았고 본인도 독한 약들을 복약하시며 체력적으로 힘이 드시는지 3주간 있었던 병원은 가기도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였다. 마약성 진통제 또는 호르몬제를 복용하시는데 식사가 뒷받침되어야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을 듯 생각했다. 사랑팀 8명의 교사들은 주간과 야간으로 머리를 맞대었고, 역시 5년 이상의 근속자들의 관찰력과 통찰력은 성공적이었다.

"허~ 맛있네~"
"예숙씨 누룽지 맛있어요?"
"네~ 조금 더 있어요?"

뜨끈하게 누룽지를 끓여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여 실행해 보았다. 누룽지의 구수함과 대체로 냄새가 적은 물김치를 제공하여 드리자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 며칠을 예숙씨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지 여쭤보고 적극 의견을 수렴하였다. 부정적으로 대답하시는 부분은 정말 아니라는 완강한 표현이었고, 대답의 끝을 흐리거나 말을 하지 않을 때는 '한번 해볼게' 라는 빈약한 표현이었지만 긍정적이었다.

2019년 4월 3일부터 7월 17일까지 항암치료를 총 6차를 진행하였다. 항암제의 부작용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예숙씨에겐 받아드리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모발이 힘없이 빠지고 손발 등의 피부가 착색되는 외모적 변화가 시작되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듯 하였다. 그녀를 보호하고 지켜보는 53명의 목포장애인요양원의 교사들도 마음으로 함께 아파했다. 암환자의 심신에 온기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원내에서는 물심양면으로 돌보았다. 하지만 6차를 시행하고 통장의 잔고가 0원이 되었다. 비장애인에게도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듯, 장애인에게도 현실은 존재한다. 20일이 되면 장애연금이 수령되지만, 앞으로의 방사선 치료, 호르몬 치료 등 그리고 기초적인 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김예숙씨에게 든든한 희망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목포장애인요양원에 거주 중인 83명의 전체 이용인 중 52%가 여성 이용인 이며, 53명의 직원 중에는 여성 비율이 70%이다. 원내에서도 2011년에 같은 유방암을 가진 케이스가 있었으나 절제술로 완치되었다. 사회복지시설에도 유방암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는 여성 장애인이 발생될 확률은 피하고 싶지만, 겸허히 받아드려야 하는 운명이라면 우리와 같은 사회복지시설도 있을 것이다. 대림성모병원과 공우생명정보재단이 개최한 공모전을 통하여 아직 14세의 세상을 살고 있는 김예숙 씨께 작은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