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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골드스토리 수상작 [조기 발견된 착한 암에게 고마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06.
조회수
2,417
첨부파일



조기 발견된 착한 암에게 고마워



조현숙







내가 사는 미국 시애틀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나무가 많은 곳이다.
 늦가을부터 시작되는 우기는 늦은 봄까지 비 내리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렇게 긴 우기가 끝나갈 즈음부터는 간간이 해가 나오고 그 빛을 받아 연하디 연한 연둣빛이 나무 끝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그때가 되면 풀 냄새 가득히 입안까지 향기가 배어들어 살아있음에 감사가 되는 봄날로 채워지곤 했다.
 그렇게 봄 향기에 취해 있던 오월의 넷째 날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들로 채워질 힘겨운 소식이었다.

 20년 전 미국으로의 이민 생활로부터 지금까지의 생활들... 이런저런 일 중에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와 혼자서 살던 중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루 이틀이 다르게 나빠지는 급박한 소식은 간 담도 암이라는 췌장암 다음으로 포악한 암이라는 병명이었다.
 부랴부랴 그렇게 우리는(아들, 딸) 한국으로 왔지만, 세계 유행병 코로나로 인하여 14일간의 격리 기간 중에는 가족들의 임종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한 지 19일 만에 아이들의 아빠는 우리의 보살핌도, 마지막 가는 길에 배웅도 없이 먼 길을 떠났다.
 그 후... 다시 우리가 살던 미국 땅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아이들의 재촉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50년은 꼭 더 살아줘야 해" 하는 아들의 말과 이번 검진이 왜 이렇게 받기 싫은 지 모르겠다는 내게 "그러면 정말 꼭 더 받아 봐야겠네" 하는 딸의 말이 아빠 먼저 보내고 난 남은 한쪽 부모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가 싶어 마음이 짠했다.
 결과는 유방암 초기라고 했다. 검사를 해 주신 선생님께서 수술은 초기라서 간단하게 끝날 수 있겠지만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기간이 길어 항암 6회 방사선 치료가 28-33회 정도를 받아야 한다는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셨다.

 수술은 겁나지 않았다.
 엄마도 고모도 내 나이 즈음의 오십 대 초반에 유방암을 겪으셨고 그 후로 두 분 다 건강히 사시다가 엄마는 노환으로 올해 이른 봄에 돌아가시고 고모는 만 십오 년 넘도록 다른 건강에 이상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모계, 부계 다 유방암이라 언젠가는 내게도 올 일이었다고 생각되어서 였을까 아니면 초기라는 말에 안도가 되어서였을까 수술은 겁나지 않았지만 어디서 수술을 받아야 할지 또 치료는 어디서 해야 할지의 고민이 깊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을테지만 나는 미국인 신분인지라 쉽지 않았다.
 무조건 대학병원에서 수술받기를 권하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큰 병원을 찾아갔지만, 유전적인 영향 또 긴 치료 기간을 고려할 때 성급하게 수술하고 돌아갈 일부터 생각하는 나를 읽으셨던지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은 유난히 눈이 모든 것을 다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했다. 나도 선생님의 마음이 읽혔으니) 혹이나 뗀다고 하는 생각이면 혹 떼어줄 다른 의사 찾아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섭섭하게만 들렸다. 유전적으로 모계, 부계 양쪽 다 유방암의 가족력이면 유전자 검사부터 또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다른 쪽 가슴, 난소암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이해는 가면서도 잔뜩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치료 기간도 길어질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미국으로 돌아가서 수술과 치료를 알아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국의 의료수준이 높다고는 하지만 보험 없이 암과 같은 병이 걸리면 집이 날아간다는 소리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집도 없고 월수입도 낮은 저소득층은 모든 혜택을 다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병원 찾기도 쉽지 않고 더구나 빠르게 진행되지도 않는 의료 시스템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그러던 중 대림성모병원 김성원 선생님을 소개받은 건 빨리 찾게 된 암만큼이나 또 다른 행운이었다.
 처음 뵌 선생님은 겁먹은 나를 아시는 듯 "이렇게 빨리 찾게 된 것은 참 감사할 일이네요" 하시며 마음부터 위로해 주셨다. 거기다 급하게 서두르는 나의 처지와 형편을 고려해 주시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발생될 많은 비용 걱정까지 먼저 해 주시는 선생님을 뵈면서 정말 환자의 마음까지도 만져 주시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무사히 수술은 마쳤다. 1기일 줄 알았던 암은 림프를 타고 올라간 2개의 암을 더해서 2기 초라고 말씀해 주셨다. 앞서 유전자 검사는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 다행히 림프에 3개 이상이 아니어서 림프절 제거술은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항암치료가 꼭 필요한지 넘겨도 되는지의 맘마 프린트 검사를 해 보자 하셨다. 림프에서 발견된 암이 그래도 순한 편에 속하는 여성호르몬을 먹고 자라는 암이라 호르몬에서 떼어 놓으면 암은 굶어죽는다라는 쉬운 설명으로 말씀해 주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3주의 시간이 참 더디 갔다. 막상 결과를 보게 되는 날은 수술 날 보다 더 긴장되었다.
 결과는 유전자 변이 없고 또 향후 15년간 암이 전이될 확률도 낮은 것으로 나와 항암치료를 건너뛰고 방사선 치료 32회만 받아도 된다고 하셨다. 다시 살아난 듯 기뻤다.
 살아오는 동안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지루하다고 투정했던 그 날들이 얼마나 복된 날들이었는지 새삼 느껴졌었다. "예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랐다. 요즘에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란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유행병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무 일 없는 하루는 정말 감사가 되는 하루다. 더구나 나에게는 더 없는 감사의 시간이었다. 요즘 항암치료 약이 많이 좋아져서 전과 같이 힘들지 않다고 해도 그 힘든 과정과 긴 시간을 생각할 때 이곳 한국에서 있어야 할 시간들도 내겐 걱정이었다. 다행히 지금 방사선 치료 중에 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암이 참 흔한 병이 되어 있는 요즘 언제나 우리 모두가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그리고 어렵고 힘든 항암치료 중에 계시는 환우 모든 분들의 고통이 느껴져 기도가 되어진다.
 또한 수준 높은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OECD 국가 중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검사와 절차 최고의 신기술 의료장비들, 여러 분야에 우수한 의료진과 명의라 불리는 각 분야의 사령탑이 되어주시는 최고의 선생님들이 계셔서 세계적 의료수준을 자랑할 수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부호들이 인도로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인도의 의료수준도 세계적인 데다 영어가 자유로워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으며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런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인도의 대다수의 국민이 아닌 선택된 사람들에 대한 제한적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대다수의 국민이 손쉽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고 거기다 본인이 부지런만 떨면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한 검사를 통해서 질병을 찾아내어 빠르게 치료받고 고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나 또한 의료 후진국이라 불릴만한 불명예스러운 의료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가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가슴에 암 덩어리 붙은 줄도 모르고 점점 키우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 살려 놓고 남편은 갔다"고 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간 담도암이라는 생소한 암이 온몸에 다 펴져서 어떻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그렇게 간 사람을 위해 슬퍼할 틈도 없이 내게도 암은 소리 없이 와 있었다. 3년 전 그때도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기에 3년 동안 무슨 큰일이 있으랴 싶었다. 떠난 남편의 장례식과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빨리 끝내고 나의 치열한 삶의 터가 있는 미국으로 서둘러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만약 내 고집으로 검사를 받지 않고 그래서 내 몸에 암을 키우고 2기를 넘기도록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면 두 아이에게 얼마나 더 큰 아픔을 주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참 끔찍하다. 다행히 조기 발견된 그것도 착한 암에게 고마웠다. 암도 포악한 암과 순한 암이 있다고 해서 내게 있던 암은 착한 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조기 발견된 암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어서 먹는 약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니 때늦지 않은 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졌다. 특히나 나와 같이 오십 대 초반의 폐경기 여성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정기검진받기를 권하고 싶다.
 이번에 수술을 해 주신 김성원 선생님께서 아주 좋은 조언을 해주셨다. 노화되어 가는 과정 중에 몸에서 오류가 생겨 치유가 되지 않아 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중에 암이라고 해서 무조건 식생활을 바꾸어 채소 위주의 식사만 고집하고 육류섭취를 하지 않거나 다른 잘못된 정보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꿔 본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말씀과 함께 "유방암 희망 프로젝트"라는 선생님의 책도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13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앞으로 19차례의 남은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봄부터 연한 빛을 내던 잎들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며 내 인생에 광풍을 몰고 왔다가 모든 것은 지나가듯 거세게 몰아치던 그 바람도 서서히 잦아지는 듯하다.
 앞으로의 남은 치료를 기다리며 우리 인류가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그날을 기대하며, 또 코로나 극복에 힘겹게 봉사하시는 의료진들과 모든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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