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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골드스토리 수상작 [아내의 유방암 완치를 바라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379
첨부파일



안내의 유방암 완치를 바라며



송호승







사회 초년생 시절, 고모께서 대장암에 걸리셔서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셨다. 슬퍼도 그때뿐이었다. 5년 여 전이던가, 친구의 아내가 유방암이란다. 그 친구 이제 어쩌나 했다. 그때뿐이었다. 작년엔 고모부께서 희귀 암에 걸리셨단다. 열심히 투병 중 이시란다. 돌아가시면 어쩌시나 문득문득 걱정하는, 그때뿐이었다. 암에 의한 나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은 암은 희망이 없고 주변을 슬프게 하는 병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으나, 슬프고 아픈 일들은 즐거움과 행복한 일과 같은 삶의 일부라는 핑계를 스스로 위안 삼아 그들의 시간에 함께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문득문득 위로나 드리고 지내던 평범한 지난 봄의 어느 날, 저녁 후 늦은 귀가에 잔소리를 할 법도 한 상황에 아내는 무겁고 차분한 톤으로 "내일 가슴검사 좀 받아봐야겠다." 하며 멍울이 잡히는 부위에 대한 상태를 설명했다. 아이들과 몸으로도 잘 놀아주는 아내는 둘째와 침대에 누워서 뒹굴 대던 중 아이가 왼쪽 가슴을 짚어 따라 잡는 순간, 그간 몰랐던 멍울이 느껴졌단다. 이에 아내는 내 귀가 시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온갖 검색을 했을 터이다. 눈앞에 당장 보이는 증상도 없는 상태였기에, 지방의 뭉친 정도가 과한 것이라 믿고 싶었으나, 아내의 염려스러운 눈빛과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육감은 식은 땀과 함께 정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날은 금요일, 다음날이 토요일이지만 유방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있을 거라 믿으며 잠을 설쳤을 아내와 그렇게 잠을 청했다.

 ​ 이른 아침 일어나자 마자 인터넷 검색으로 가까운 곳의 병원들에 문의한 바, 모두 진료와 검사예약이 완료되어 진료를 받고자 하면 다음주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나는 일분일초가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끊임없이 검색하던 중 오히려 종합병원인 대림성모병원에서 오전 진료가 가능하다는 소식에 냉큼 아내에게 서둘러 다녀오라 전했다. 아내 역시 일상의 주말을 시작하는 듯 보였으나, 진료 가능하단 이야기에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때가 오전 9시였을까…… 아이들을 돌보며 별일 없겠지, 단순 뭉친 지방이겠지 하면서 흘러간 시간을 가늠해보니 보통의 진료를 받았으면 이미 귀가 길에 올랐을 시간임에도 아직 연락이 없었다. 난 부재전화의 숫자를 올려가며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던 중,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초음파 검사는 했는데, 급히 조직검사까지 해보라 해서 대기 중이야. 끝나고 연락할게". 아내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 차분함 덕에 난 의례히 하는 검사 수순이라 생각하며 내심 안심에 안심을 더했다.

 ​ 그 후로 두어 시간이 지났을 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들어오는 아내를 맞이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내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차라리 검사 받는 게 의심스럽다며 어쩌냐며 울고불고 할 것이지, 안심시키듯 괜찮은 투로 전화하더니 나를 보자마자 주저 앉는 아내가 야속하고 안돼 보이고, 두려웠다. 조직검사 결과는 수요일에 나온단다. 초단위로 드는 온갖 상상과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시간을 멈추게 했고, 수요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수요일은 왔고, 원장 선생님은 차분하고 묵직한 톤으로 암이 맞고, 촉진상 3기 정도라 진단하셨다. 나는 진단 직전까지 '내 인생에 진정으로 믿으면 그렇게 되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생각해내려 애쓰며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될 거라며 굳게 믿고 있었으나, 아주 찰나에 든 '암이면 어쩌지' 라는 부정 탄 생각 때문인지 그 믿음은 엇나간 게 돼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는 검사 때 몸소 느낀 감으로 이미 각오는 했는지, 굵은 눈물방울들을 흘려냈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결과를 통보 받고 나온 아내와 나, 나는 분명 아내가 암이라는 막막한 두려움과 '왜 하필 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여 위로의 말로 다가가려는데, 아내의 첫 마디는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해버렸다.

 "우리 아들, 이제 재활치료 적응해서 열심인데 내가 이러면 앞으로 아이 운동은 어떡하지?"
 '어…… 아들. 그래 우리 아들 어떡하니, 근데 난 당신을 어떡하니……'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말로 할 수 없었다.
 첫째, 아들, 14년 생, 이제 6살인 잘 생긴 우리 아들은 생후 4개월 가량 시작된 원인 모를 발작으로 뇌전증을 진단 받아 현재 뇌병변 장애등급을 받은,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이다. '아이의 발병과 14개월 간의 입원생활이 아내의 발암 원인이었을까, 거기에 남편 내조까지 하느라고 더더욱 악화 된 것일까?' 하는 마음에 본인보다 아이에게 더 치우친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 본인 먼저 신경 써 달라는 위로를 할 수 없었다.

 ​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일이 아닌지 의료진들은 진단 받은 아내와 보호자인 나를 위로와 함께 효율적이고도 신뢰감 있게 앞으로의 일정과 정보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 암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종류인지, 꽤 진행된 바, 전이된 곳은 없는지 다른 부인과, 내분비과 상태는 괜찮은지 등에 대한 검사가 안내됐고, 정신 없이 일정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후, 유방암에 대해 쉴새 없이 검색한 정보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검사 및 치료를 진행할지, 진단받은 병원에서 진행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으나, 주변의 조언과 갖은 검색을 통해 담당 의사선생님이 명의로 명성이 나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의 조언을 수렴하여 깊은 상의 끝에 진단받은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마음을 굳혀 소변검사, 혈액검사, MRI, 흉-복부 CT, 전신 뼈 스캔, 심장 초음파, 갑상선 및 자궁 검사 등의 일정을 예약했다. 병원 선택에 대한 굳은 믿음은 신속히 진행되는 검사와 빠른 결과 통보로 더욱 단단해졌고, 그 믿음은 이 와중에 희소식으로 보답을 해왔다. 검사결과 '림프절 전이는 보이나 뼈나 장기 등의 전이는 없다'라는 소견으로 나왔고, 다른 과 진료도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이는 치료의 예후에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으로, 믿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시작된 첫 행보였다.

 ​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암의 성질을 파악하는데, 유방암은 크게 호르몬과 세포성장인자 관련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아내의 경우는 환우들 사이에서 'HER-2 양성' 이라 불리는 암에 해당하며 위 분류상 후자 쪽의 성질에 속한다고 한다. 암 성질이 파악되자마자 약물이 처방되었는데, 항암제 두 종류 및 표적치료제 두 종류로 조합된 약물에 대한 기능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항암제는 한 종류의 약으로 모든 암을 치료하는 줄 알고 있었으나, 암에 따라 다양하게 조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암은 종양 크기가 5센티미터 이상의 3기에 해당되어 선항암으로 크기를 줄인 후 절제술을 하는 방식으로, 위 조합의 항암제가 매회 3주 간격으로 총 6 차례에 걸쳐 투여되었다. 환자에 따라 항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한가지 알게 된 공통된 사실은 모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힘겨움은 항암제의 부작용과 같은 신체적 고통과 재발, 전이 등의 두려움과 같은 심적 고통일 것인데, 이 두 가지가 동반된다는 것은 TV 다큐멘터리나 인터넷 상의 기사나 후원, 모금 사례 등을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한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리라. 그런 나는 '어쩌지'만 남발하는, 실질적인 항암 치료 대비에 서투를 뿐 이었다.

 ​ 반면, 아내는 진단 전부터 각오를 했었는지 주변의 모든 경로를 통해 유방암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고, 서투름에 허우적대는 나를 이끌고 침착하게 항암 준비를 시작했다. 이에 아내는 제일 먼저 심적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일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가발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발이 배송되기 전까지도 나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다 가발을 보는 순간 환하던 방의 스위치를 끄듯 내 감정의 밝기는 이내 어두워졌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에게 1차 항암제가 투여됐다. 네 가지로 조합된 항암제 각각 투여되는데, 약 반나절 이상 소요가 된다. 또한 약물 마다 부작용이 다르기에 가급적 병원에서는 입원하여 투여 받도록 권유한다.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겠지만, 아내는 1차의 첫 약물이 투입되자 오한, 오심, 구토, 발열 및 쳐짐 등을 반복하며 약 10시간 만에 투여를 완료했다. 중간 중간 부작용 방지 약물도 투여가 되고, 마지막 네 번째 약물 투여 후 48시간 내에 면역력을 보강시켜주는 약물도 투여가 되어야 한다. 이에 아내는 2박 3일 간 입원하며 일정대로 첫 항암을 마쳤다.

 ​ 약물 투여 후 아내는 견딜 만 하다라는 말도 할 정도였으나, 면역력을 보강시켜주는 주사 후 몸살감기의 근육통과 같은 통증을 호소하며 이내 쳐지기 시작했다. 구토와 설사가 시작되었고, 잠을 자지 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1차 시 아내의 부작용에 대해 파악하여 남은 차수를 대비하려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2차부터 지난 주 맞은 마지막 6차까지 각 차수마다 부작용의 증상과 발생시기는 우후죽순이었다. 어느 차수에는 염증이 심해 머리부터 다리까지 종기가 솟았고, 어느 차수에는 코피가 예고 없이 흘렀으며, 구토와 설사는 매 차수마다 괴롭혔다. 특히 손발 저림은 수면장애를 줄 정도로 빈번하고도 지속적인 부작용이었다. 오래 전 피로 풀이 용으로 샀던 에어마사지기가 이렇게 소중하게 쓰인 적이 없었다. 에어 패딩 실밥이 다 터지도록 아내는 밤새 기기 도움을 받기도 했다. 1, 2차 항암 후 종양내과 선생님께서 체력으로 버티지 말고 응급실 또는 진료를 통해 약 처방으로 도움 받으라 간곡히 조언해주었다. 이 조언과 마사지 기계가 그나마 6차까지 지연 없이 항암일정을 마치게 해준 게 아닌가 싶다. (체력이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항암제를 맞을 수 없다)

 ​ 3주 주기로 그렇게 6번의 항암제를 맞고 우여곡절 끝에 이제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은 암의 최종 병기 및 제거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내는 매 차수마다 항암제 투여하는 간호사분들께 마지막 한 방울도 야무지게 맞고 싶다는 부탁으로 모든 차수를 진행해냈고, 그런 야무진 환자를 의사 및 간호사 분들은 더욱 잘 보살펴 주셨다. 이에 부정 탄 생각 단 1도 없이 아내의 수술결과는 좋을 것이라 기대한다. 무사히 항암스케줄을 마쳐 수술이 가능해 진 사실이 의료진을 믿음으로 생긴 두 번째 감사의 행보이다. 암이 의심된 날, 진단 받은 날, 치료가 시작된 날 모두 '어쩌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제대로 된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난, 이제 서투름 대신에 수술과 수술 후 겪게 될 아내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해 대비하고자 한다. 각오와 의지에 지식과 실천을 겸비해 아내가 오래도록 겪어야 할 모든 변화에 힘껏 도움이 되는 보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내를 믿고 병원을 믿고, 내 자신을 믿는다. 이 모든 믿음으로 우리 가족의 감사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 아내는 여전히 처녀시절 그대로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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