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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골드스토리 수상작 [보호자인 나 또한 엄마에게 치유를 받는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167
첨부파일



보호자인 나 또한 엄마에게 치유를 받는다.



오미형







"미형아, 그 동안 너 힘들었던 거 여기다가 다 두고 가자. 너 많이 힘들었잖아, 그래서 엄마가 더 여행 가자고 한 거야. 그러니까 여기다 다 놓고 가~"

​ 작년 가을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담담하게 건네던 엄마의 말씀에 영화의 필름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지나갔다. 2016년 3월,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마침 이직을 하기 위해 쉬고 있다는 핑계로 나는 엄마와 한 몸처럼 지낼 수 있었다. 새롭게 부여된 보호자라는 역할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내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가며 엄마 손을 꼭 잡았다. 대학병원 진료는 처음이라서, 보호자라는 것을 처음 해봐서 허둥지둥 부족한 내 모습이 엄마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병원 접수, 진료, 수납의 동선을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병원에 갈 때 마다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지만, 태연한 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 6차까지 이어진 선 항암 동안 엄마의 작은 변화에 노심초사 하면서, 간호사인 친구들이나 유방암 환우들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얻었고,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 항암제인 도세탁셀과 아드리아마이신의 부작용으로 근육통과 손발 저림이 컸던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밤낮으로 계속 주물러 주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식사를 못할 때는 겨우 누룽지만 끓일 수밖에 없었던 미천한 요리 실력이라서 죄송한 마음이었다. 때때로 보호자로써 엄마의 의중을 잘 살피지 못할 때도, 손이 느린 것도, 집안일에 서툰 것도 답답했다. 그렇게 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엄마의 기분에 따라 내 일상이 점점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엄마가 힘들지만 않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항암이 끝난 후 결과가 너무도 좋다는 교수님의 한마디에 눈물이 흘렀다. 기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 항암 후 7월 26일, 엄마는 수술을 받았다. 항암결과는 좋았지만, 염증성 유방암이기에 왼쪽 가슴 전절제로 결정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수술실 앞에서 '엄마 힘내라고 손 꼭 잡아드려야지' 생각했지만 그럴 사이 없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에 발을 동동 굴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8월 25일, 한 달이 지나도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 방사선 치료를 미루고 허셉틴으로 표적치료를 먼저 시작한 그 날도 기억이 난다. 수술 5개월 후, 28회의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매일 충남 당진에서 건국대학교병원까지 두 시간의 거리를 왕복한 것도, 끝날 것 같지 않던 18회의 허셉틴 치료가 무사히 끝난 것도 엄마가 잘 버텨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가끔은 보호자로써 선택과 책임의 연속인 생활에 지친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항상 되뇌었다. 일찍이 엄마한테 많은 상처를 줬던 아빠를 보면서 내 정서적 버팀목이 돼줄 수 없겠다고 판단을 했었다. 그리고 결혼해서 가장이 된 오빠에게도 기대고 싶다고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서 나는 그냥 다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였던 내가 이만큼 성장할 때까지 무수히 엄마 손을 빌려왔고,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받았기에 그것만 생각해도 힘이 났다. 그렇지만 나와 다르게 엄마는 딸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 것도, 결혼은커녕 연애를 하지 않는 것도, 내 일상이 바뀐 것도 모두 엄마의 책임이라고 미안해했다. 그래서 딸 걱정 덜어놓으라고 독서동호회에 다시 나가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꾸준히 걷기 운동이라도 하는 등, 내가 놓쳤던 나의 다른 일상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 2017년 2월, 방사선치료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추운 겨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를 선산에 모시던 날, 일이 바쁜 친 오빠를 대신해 나와 엄마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며 양아들 노릇을 하던 오빠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연달아 슬픔이 닥쳐오니 나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었는지 새롭게 만들어가던 내 다른 일상 또한 무너졌다. 사실 엄마는 유방암 외에 골수섬유화증이라는 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이상소견이 있어 발견했다. 골수섬유화증은 조혈모세포이식이 완치의 방법이기에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유방암 표적치료 종료 후 조혈모세포이식을 천천히 준비하자던 담당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엄마보다 담담한 듯 표현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체구로 그 힘든 치료를 어찌 버텨내실까, 또 그런 치료과정을 어떻게 지켜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한 나날을 보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 등록된 기증희망자나 엄마의 형제들 중 조직적합성향원형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우는 엄마를 토닥여 줄 수도 안아 줄 수도 없을 만큼 나 또한 내 마음을 다잡기에도 버거웠다.

​ 이 과정들 속에서 직장을 갖는 것이 너무 무의미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님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서 편하게 지내기만 했던 것 같아서, 아직은 자그마하더라도 비를 피할 수 있고 햇빛을 막아줄 수 있는 딸이 되고자 더 기운을 냈다. 종교는 없지만 항상 모든 신들에게, 돌아가신 조부모님 외조부모님께, 해와 달과 별에게 엄마의 건강과 행복을 부탁하고 있다. 어디서든 누구든 꼭 한번쯤은 들어줄 것이라고 바라고 또 바랬다. 그리고 여전히 날 보며 의지하고 다른 한 편으로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서도 무기력하지 않으려고 했다.

​ 2018년 6월 말, 유방암 정기검사를 마치고 유난히도 불안해하던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불안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전이 의심소견으로 여러 정밀 검사를 했고, 다학제진료 끝에 전이가 아니지만 폐에 이상이 있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안심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곰팡이 균이 검출이 되었다는 연락에 바로 엄마와 짐 싸서 입원 후 3주간 병원 생활을 했다. 퇴원 후 약 1년 정도 진균제를 복용하기로 했다.

그 즈음,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여러 가지 일들로 많이 지쳤는지 엄마에게마저 가시를 세우는 내 모습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부둥켜안고 울기도하고, 말없이 지내기도 했다. 지역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심리안정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적극 추진해 떠나게 된 여행지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 "미형아, 그 동안 너 힘들었던 거 여기다가 다 두고 가자. 너 많이 힘들었잖아, 그래서 엄마가 더 여행 가자고 한 거야. 그러니까 여기다 다 놓고 가~"

​ 이 말에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세 개의 문장들이
'딸아 너는 힘들지 않고 정말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단다.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힘들지 않아야 했고,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아야만 하는 굳은 다짐이었던 거라고. 그래서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엄마가 미안해. 그러니까 여기다 그 마음 모두 이곳에 내려두고 현실로 돌아가자. 우리가 더 담대해지고 더 기운내자.' 라고 말해주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담담한 말투였지만 엄마는 이렇게 내 맘을 어루만져주고 토닥여 주었다. 여행 이후 거짓말처럼 온몸을 감싸고 있던 가시가 사라졌다. 이렇게 엄마로 인해 내가 치유를 받았다. 때때로 마음이 어려운 때면 항상 엄마의 말씀을 떠올린다.

​ 2019년 7월 현재, 엄마는 유방암센터, 종양혈액내과, 우울감과 불면증으로 인한 정신건강의학과, 관절염으로 인한 류마티스 내과, 림프부종으로 재활의학과, 폐 치료를 위한 호흡기 내과 등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있다. 이달 말 진균제 치료가 끝이 난다. 그러면 미뤄두었던 조혈모세포이식준비를 다시 하게 될 것이다. 엄마와 껌 딱지 마냥 딱 붙어서 함께한 시간이 벌써 3년하고도 5개월이 되어간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침이면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먹고 엄마 약을 챙겨드리고 림프마사지를 하면 하루가 시작이다. 같이 게임을 하기도, 책을 읽기도, 산책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하루 세끼 챙겨먹고 집안일 하면 하루가 금방 간다. 자기 전에 엄마와 TV를 보면서 한 시간 정도 발과 다리를 주물러드린다. 아침이면 매일 주물러드리느라 뻣뻣해진 손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줘야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손으로 꾹꾹 주물러 드리고 싶다. 아직도 병원을 가는 것이 두렵고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서울로 놀러 가듯 조금은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요리에 서툴러서 엄마의 레시피가 필요한 딸이지만 이제는 요리에 대한 겁만큼은 없어졌다. 쓰레기 버리기와 화장실 청소는 아빠의 몫으로 나머지는 내가 하는 등 집안일의 분배는 이루어 졌지만, 엄마는 틈틈이 엄마가 할 수 있는 반찬이나 설거지, 세탁기 돌리기, 화분관리 등은 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한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지금은 말리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 중 우선순위가 되는 것들이 바뀌겠지만 나는 최대한 늦게까지 보호자라는 역할을 우선순위로 둘 것이다.

​ 요즘도, 잠든 엄마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고,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일상에서 뜬금없이 때때로 눈물이 난다. 그래도 행복하다.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같이 여행 다닐 수 있어서, 같이 커플티를 입을 수 있어서, 매일 안아드리고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내가 엄마 보호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엄마를 통해 치유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엄마는 가을 산책길에 주운 단풍잎을 고이 말려 편지와 함께 딸 직장으로 보내주던 로맨티스트다. 그리고 나에게 20대 때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서른 살 넘어서 결혼을 해도 괜찮은 거라고 알려주던 인생선배다. 또한, 그 누구보다 나와 가장 잘 맞는 여행메이트다. 나의 첫 월경에 아빠로 하여금 꽃다발을 안기게 만드는 속 깊은 분이다. 이런 분이 내 엄마라서 감사하다. 엄마 딸이라서 정말 행복하다. 내방 벽 한쪽에 엄마가 써주신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는다.'라는 캘리그라피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5년 전, 엄마가 캘리그라피를 배우면서 자식들에게 꼭 써주고 싶었던 문구라고 하셨다. 내가 항상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살길 바라셨다. 지금 내 꿈은 엄마랑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알콩달콩 지내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꿈을 향해 한 발 한발 내딛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도 있지만 서로가 다독거린다면 지금까지 잘 버틴 것처럼 가능할 것이다.

​ 엄마가 모든 것을 잘 버텨내 줘서 고맙다. 덕분에 오늘, 지금, 이 순간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하는 오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시간들이 그냥 다 고마운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다. 치료과정에서 엄마는 엄마대로,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나대로 많은 슬픔과 힘듦을 경험했고, 그 이면에 있는 희망과 행복을 찾기도 했다. 많은 생각들을 그 동안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중한 이 시간을 또 마음 한 켠에 잘 넣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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