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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브론즈스토리 수상작 [긍정에너지로 맞서는 나의 암 스토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198
첨부파일



긍정에너지로 맞서는 나의 암 스토리



조하늘







어느 날 문득 오른쪽 가슴을 만져보니 딱딱한 무언가가 잡혔다. '이건 뭐지? 혹인가?' 두렵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젊으니깐 암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던 중 친구의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방외과를 찾았다. 모양이 이상하니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권유에 '설마..내가?'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유방암이었다.

 ​ "유방암이에요. 2기 정도?"

 의사는 담담하게, 늘 이러한 말을 하였듯 나에게 통보하고 빨리 큰 병원에 갈 것을 재촉하였다. 엄마는 의사에게 유방암에 걸려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치료하면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지, 20대 젊은 나이에도 암이 걸리는지 등 많은 질문을 쏟았다. 의사는 "치료하고 나서 아기도 낳고 결혼도 하고 잘 사는 사람들 많아요~"라며 유방암이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시키는 병이 아님을 강조하며 우리 모녀를 안심시켰다. 의사의 희망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내 인생에서 암이라는 존재는 없었는데, 당장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소식을 전할지 막막하였다. 오히려 '내가 암이라고? 믿을 수 없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유방암 환자'로 결론이 나와버렸기 때문에 의심과 미련보다는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하였다. 간호사는 조직 슬라이드와 중증환자등록신청서, 의뢰서를 챙겨주며 유방암 환자가 되는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나는 간호사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병원에 들어갈 땐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내 인생이 병원 문을 나서니 국가에서 인정하는 중증환자가 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하였다.

 ​ "어떻게 이런 일이..믿어지지 않아. 우린 가족력도 없는데 왜 네가 걸린 거니?"

 엄마는 병원나이로 28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나 역시도 상황은 받아들였지만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하필 나일까?' 20대 후반의 여성, 직장인, 4월의 예비신부. 그 동안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다양했는데 여기에 불청객인 '암환자'가 포함되었다. 그것도 여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방암이다. 나는 아프지 않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삶을 살았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여러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암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용하는 불행한 스토리, 나이가 들어 생기는 병으로 여겼고 완벽한 타인의 삶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나니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었으며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평범한 삶도 있지만 이러한 삶도 있는 거라며 우리만의 인생을 살면 된다고 위로해주었다. 의사의 말대로 결혼하는데 있어 유방암은 장애물이 되지 않았고, 나는 남자친구의 말을 통해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김이율 작가의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뼘씩 자란다』책에는 '그러나 분명한 건,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거다. 부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짧기를 행동만이 살길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나도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하고 탓하기 보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싶었다. 우선 마음을 추스리고 직장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암의 존재를 알렸다. 팀장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의 어머니도 유방암인데 20년이 지나도 잘 살고 계시다고 위로해주었고, 동료들은 지금껏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니 암도 거뜬히 이기고 돌아올 거라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치료하면 낫는 병이라며 나를 중증환자로 여기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지지해주었다. 시간이 약이라던가. 눈물만 흘렸던 날들은 지나가고 손꼽아 기다리던 첫 진료를 받았다. 원장님은 촉진 후 제출한 자료들을 보시더니 암이 확실하다며 수술날짜를 잡아주셨다. 한 달 동안 확실한 암 선고를 두 번 받은 셈인데 앞으로 건강할 날만을 꿈꾸었기에 상처보다는 오히려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내 몸이 고마웠다. MRI, 유방초음파, CT, 뼈스캔 등 들어보지도 못한 검사를 받으며 3주의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나에게 남은 과제들을 하나씩 수행하였다. 다행히 3개월의 휴직과 1개월의 병가가 주어져 마음 편히 백수생활을 즐기면 되었는데 5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있어서 그런지 아쉬움보다는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가 암을 받아들이면서 외치는 구호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암을 불행, 절망, 죽음으로 여길 수도 있고 희망, 앞으로 나아갈 의지, 삶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미 걸린 병을 부정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관점을 바꾸어서 암을 상대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더 좋지 않을까? 유방암 수술을 위해 입원하니 우리 병실에는 50대에서 60대 사이의 아주머니들뿐이었다. 병실 복도를 걸어봐도 내가 제일 젊은 환자였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왜 입원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밝은 얼굴로 유방암이라 치료하러 왔다고 답하였다. 암이라고 우울하고 기운 없이 있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TV, 주변만 둘러봐도 암을 극복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비(非)암환자들은 암에 걸리면 하루하루가 힘들 거라고 여기는지. 유방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90%를 넘는다!

 ​ 다행히 전이가 없어 부분절제술로 암을 떼어내고 1시간 40분만에 수술이 끝났다. 담당 주치의는 수술이 아주 잘되었다며 '파이팅!'이라고 응원의 말을 해주었고, 같은 병실을 쓰는 아주머니들은 젊어서 회복이 빠를 거라며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선배로서의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다. 나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어린 환자를 위해 식이요법, 운동, 유방암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모습을 보며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위안도 받을 수 있었다. 2주 후 침윤성 유방암으로 전이는 없지만 호르몬영향을 받지 않는 암 타입이기 때문에 항암이 필수라는 소견을 들었다. 입원 중에 아주머니들이 항암만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항암이 제일 힘들다고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머리카락 없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결국에는 나도 항암을 하게 되는구나, 유방암이 꼬리가 긴 암이라고 하는데 재발과 전이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구나, 머리카락만은 있길 바랬는데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에 또 한번 감사하며 항암 약이 혈관 곳곳을 돌아다녀 남아있는 암세포를 죽여주길 바랬다. 1차 항암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토끼풀과 어우러져 피어난 세잎 클로버를 보고 나도 모르게 네잎 클로버를 찾고 싶어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행복(세잎 클로버의 꽃말) 속에서 행운(네잎 클로버의 꽃말)만을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선 항암 없이 수술 받은 것, 전이가 없어 림프를 떼지 않은 것, 암이 커지지 않아 부분절제술을 받은 것 모두 행운이었다. 그런데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되는 행운을 바랬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며 항암이 날 죽이는 약이 아니라 앞으로 더 오래 살게 하는 의미가 되기를 바랬다. 1차 항암을 하러 입원하고 나서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몰라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사람마다 다른데 약을 맞으면서 부작용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TC라는 항암을 4번 하는데 병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약이 약해서 잘 지나갈 것이라고 하였고, 옆 침대에 누워있는 아주머니는 자기보다 적게 맞는다며 부러워하였다. 그래도 항암은 항암이라고 별다른 부작용 없이 하루를 살다가도 허리가 끊어지는 통증에 응급실에 간 적도 있고, 혀의 감각이 무뎌져 음식을 먹어도 맛을 잘 못 느끼던가 약해진 면역력 때문에 코피가 주르륵 나는 날도 있었다. 왜 환자들이 항암을 '항암산(山)'이라고 비유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산에 오르는 것처럼 몸이 힘들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내려와서 느끼는 대견함이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으로 유방암을 겪으며 내가 느끼게 된 행복은 유방암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병원에서는 또래를 만날 수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언니들을 만나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무지의 영역이었던 수술과 항암을 대비하였다. 암이라는 존재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자신을 아픈 사람으로 여기면 마음까지 쳐지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암을 앎으로 여겨 내가 몰랐던 걸 알고 바꾸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생각이 들면 여기 있는 20대 젊은 환자를 떠올리고 훨씬 긴 인생을 산 것에 위안받기를! 지금 항암 중이어서 또는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모든 치료가 끝나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에게 암 덩어리를 떼어 냈는데 뭐가 무섭겠냐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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