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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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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골드스토리 수상작 [나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21.
조회수
2,174
첨부파일



나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현화







나의 봄이 아프다 다 갔다. 화사하게 빛날 예정이었던 나의 봄이 아픔으로 물들어 나락으로 흐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한다. 다육식물과 초록식물 가꾸기가 취미인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을 전부로 알던 평범한 엄마가 블로그를 하고 글쓰기를 시작하며 잊고 지내던 꿈에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잠시 쉬어가라는 뜻인지 건강에 문제가 생겨 잠시 그 날개를 접어야만 했다. 이 시기가 분명 내게 무언가 큰 메시지와 기회를 남겨줄 것이라 믿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하늘 아래 땅 위의 만물이 소생하는 3월 초,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일까 그렇게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늘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왔던 것도 같다. 20년 전 친정엄마께서 유방암 진단을 받으시고 유방 전 절제 수술과 겨드랑이 림프절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까지 다 받아내셨다. 그 후로도 5년간 타목시펜을 복용하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셔야 했다. 그때는 가족 중 내가 엄마의 곁에서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과 힘든 치료과정을 가장 많이 함께 했었고 5년 동안 늘 병원을 모시고 다닌 것도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는 엄마가 이렇게 상실감이 크고 아픔이 깊었을 것을 다 헤아리지 못했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5년 전 가을 나의 언니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유방암 1기 진단을 받고 서둘러 3주 안에 유방 부분 절제와 감시 림프절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완벽하게 잘 되었고 전이도 없었으며 다행히 항암주사 치료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언니는 방사선 치료를 32회나 받았다. 언니는 아직도 타목시펜 복용을 하는 중이고 5년째의 여름을 맞고 있다. 타목시펜 부작용으로 수술 후 1년 만에 난소에 종양이 생겨 나팔관을 드러내고 폐경에 이르게 되었다. 언니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 조기 폐경이 더 상실감이 크더라."고 말이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언니가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 친정 엄마는 당신이 겪었던 아픔을 내 딸이 다시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절망스러워 하셨다. 무엇보다도 암이 유전이라는 세상이 다 아는 그 사실 때문에 "내가 너에게 아주 더러운 것을 물려줬구나." 하시면서 자책도 하셨다. 당신과 똑같은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엄만 부모로서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다 이겨내고 암을 극복하신 엄마는 70을 넘긴 지금 연세에도 엄청난 열정으로 각종 사회봉사 기여와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으로 취업까지 하신 멋진 우리 엄마. 그리고 내성적인 언니는 힘든 투병의 시간 속에 스스로 고립되어 잠시 지내기도 했지만 취미생활을 찾아 도예공방을 다니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들을 나누며 완치 판정을 받을 날이 곧 돌아온다. 그렇게 잘 이겨내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난 막연한 그 유전성 암에 대해 무뎌지게 되었던 것 같다. 언니는 5년 전에 난 올 해 BRCA1/2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 언니와 내겐 또 딸이 있으니 이런 검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그 당시의 언니도 올해의 나도 유전에 의한 유방암이 아니라는 "질병연관성이 의심되는 변이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라는 검사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친정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딸 가진 엄마로서의 미안함도 덜었지만 「이 결과는 현재와 장래에 유방암 및 난소암 발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암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는 환경 및 생활양식과 같은 비유전적 요인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적 요인이 포함됩니다.」라는 Comment도 받는다. 우리의 딸들은 결과와는 별개로 앞으로 성장하면서 주의하며 검진하여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유전자 검사를 받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결과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아닐 것이다. 더 주의하고 신경 써서 내 자식에겐 이 아픔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더 열심히 좋은 식생활과 생활습관으로 건강한 가족건강을 책임지고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올해 나이 46세이다. 두 돌 까지 모유를 먹였던 이제 10살이 된 늦둥이 나의 딸이 우연히 엄마의 가슴에서 작은 멍울 하나를 발견한다. 즉시 초음파 검사를 하러 병원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조직검사를 실시하고 5일 후 전화로 거짓말처럼 믿어지지 않는 암 선고를 받게 된다. 그 당시 가장 어려웠던 건 친정엄마에게 유방암 발병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언니는 "엄마도 나도 다 이겨냈잖아. 너도 할 수 있어. 언니가 옆에서 너와 함께 할게." 라고 해줬다. 수술을 앞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남편과 언니와 함께 엄마를 찾았다. 세 모녀의 끝나지 않은 비극을 엄마는 겉으로는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내가 없는 곳에선 참 많이도 울고 있을 엄마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난 5년 전 언니를 수술해 주셨던 우리나라 최고 유방암 권위자이신 김성원 원장님을 찾아가 각종 수술 전 검사를 하고 수술을 받게 된다. 1cm 미만의 크기였고 수술 후 최종 병기는 1기였다. 처음 검진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설마 암이겠어?" 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암으로 판정을 받았다. 수술 후 최종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설마 항암치료까지 받진 않을 거야. 난 언니보다도 크기도 작고 수술도 완벽하게 잘 되었고 물론 전이도 없다고 했잖아" 했지만 결국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과를 안고 돌아서야 했다.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고 나서도 느끼지 못했던 절망을 그 순간 처절하게 느꼈다. 항암주사의 고통과 부작용을 난 20년 전에 엄마를 통해서 이미 다 보았기 때문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인줄 알면서도 결과를 듣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엉엉 울며 항암 안할 거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1시간 후쯤 집에 오는 길에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결과 보러 간 딸이 소식이 없자 전화를 했는데 울음이 묻어나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항암주사 맞아야 한다니? 그럼 맞자. 그래야 네가 안심하고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어. 엄마가 남은 인생 너에게 다 쏟을게. 그렇게 하자 아가" 엄마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더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내려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난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과 마주쳤다. 구강 청결제 하나를 사들고 나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순간 떠오른 글귀 하나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데일카네기의 말이다. 사실 내가 가장 두려워 한 항암 과정 중 하나는 바로 머리카락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내 앞에 나타난 다리를 잃은 사람을 본 순간 난 치료를 받을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난 4월 9일 첫 항암을 시작으로 6월 11일 바로 이 글을 쓰는 날의 어제 마지막 4차 항암치료를 마쳤다. 지독히도 힘들고 아팠던 항암을 시작하면서 난 블로그에 비공개로 항암일기(C Diary)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고통의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몰라 난 기록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1차 항암 후 14일이 되던 날 더 이상 빠지는 머리칼을 감당할 수 없어 삭발을 했고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 기록된다. "여자가 머리카락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이없게도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큰 상실과 상처였다." 내게 다가올 예정된 불행을 알고 있어도 그래서 미리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상처나 아픔이 덜해지지는 않더라는 사실을 알았다. 애써 피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다가오는 상황과 용감하게 부딪히며 온 힘을 다해 싸워내야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 항암을 맞고도 3주간의 회복기가 지나면 바로 많은 횟수의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항암만큼은 힘들지 않다니까 그것도 함 버텨보기로 한다. 내겐 나의 46년 인생에서 가장 큰 시험에 들었을 때 함께 나눠주고 버틸 힘을 주었던 나의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와 오래 함께 갈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와 응원들이 참 따뜻해서 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한줄기 웃을 수 있는 여유도 부렸다. 내가 가슴 일부를 잃고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고통의 시간 속에서 참된 나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병은 나을 것이고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것이다. 지금도 남은 항암 부작용을 견뎌내야 할 시간들이 아직도 남아있고 견딜 수 없이 힘들면 또다시 절망하고 괴로운 시간을 갖겠지만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다. 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내가 모든 치료를 끝내고 회복하는 그 순간부터는 내게 주어진 나머지 생은 덤으로 얻게 될 선물 같은 삶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유방암 환자가 생겼을 때 제발 하지 말아야 할 어설픈 위로가 있다. 첫째, '요즘은 유방암은 암도 아니야. 완치율도 가장 높다더라.' 위로라는 것을 알지만 일단 화가 난다. 겪어보고 다 알 필요는 없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 바로 이 병과 치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충분히 아파하는 환자에게 '괜찮아'라는 말보다 '많이 힘들구나!'라는 말이 때로는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난 절대 괜찮지 않으니까 말이다. "I'm not okay" 셋째, 환자가 되고 나면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가족들 모두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누구도 환자 본인보다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포스터를 본 것이 한 달이 넘었다. 처음부터 써보고 싶었지만 투병중이라 마음먹고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감 하루를 남기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내가 꿈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 자꾸 읽어보고 고치고 하다가 제출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원고를 쓰다 보니 마감일 당일이 되어버렸다. 부족한 글을 쓴 나의 용기에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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