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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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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브론즈스토리 수상작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어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26.
조회수
2,042
첨부파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어요



나윤주







오랜만에 친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는 전직 피부 관리사셨습니다. 내가 유방암으로 피부가 검게 변하고 머리가 하나 없는 상태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들 중에 한명이었죠. 피부가 검다며 온갖 좋은 제품으로 예쁘게 만들어 주시고, 머리가 없는 머리통을 두상이 너무나 예쁘다고 칭찬해주던 언니. 그 언니가 이젠 대림성모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하십니다. 늘 웃으시면서 일하시고 친절하시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니가 조심스럽게 유방암 극복 스토리를 써보라고 하시네요. 그러면서 병원 원장님의 전문 분야를 얼마나 강조해주시던지. 하하 언니도 대림성모병원 열혈 직원 중의 한 명인가 봅니다.

 저희 집은 누구 한 명 아파서 입원해 본 적도 없는 건강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던 2012년 3월, 전주에 사시는 엄마가 유방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말에 서둘러 올라오셨습니다. 목동이대병원에서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바로 4월 5일 수술날짜를 잡았습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가 않네요. 그날의 날씨를... 4월인데 날씨가 스산하고 컴컴해지더니 급기야는 눈발까지 날리더군요. 아! 엄마 수술 날인데.. 뭔가 좋지 않은 징조 같고 불길하고 어떻게 근무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실로 들어가니 너무나 태연히 앉아계시는 엄마를 보는 순간, 저는 왈칵 울음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도의 울음이었는지 그 동안 잘해드리지 못한 미안함의 눈물이었는지 모르겠더군요. 엄마는 유방암 2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후로 6차( 1차에 일주일 간격으로 2set로 총 12번)의 항암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쪽 유방을 완전히 제거하시니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어깨가 틀어지고 허리까지 영향이 오더군요. 또한 항암의 부작용으로 발이 허공에 뜨는 듯해 자꾸 헛발 디딤으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항암 하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안하셔서 그저 견딜 만 하신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멀리 있는 저희보다 항암 때마다 들리셔서 반찬해주시고 말벗해주시던 이모들이 엄마에겐 더 큰 힘이 되셨을 것입니다. 감사해요 이모님들~

 엄마의 유방암 이후로 저는 건강검진 때마다 가족력에 엄마의 유방암을 써 넣어야 했습니다. 유방초음파를 하면서 선생님께 엄마의 유방암을 말씀 드렸더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69세경에 발병하셨으면 저도 혹시 발병이 되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발병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시더군요. 안심하라고 하셨던 말씀인지, 아님 어떤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러 엄마도 다시 활기차게 생활하시게 되었고, 저도 역시 판에 박힌 바쁜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바쁜 게, 틀에 박힌 단조로운 생활이 너무나 당연한 생활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가슴아래에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선명히 만져지고, 딱딱해서 이게 혹시 암덩어리 일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8월경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11월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어 '그때 확인 하면 되지' 하는 안일함이 저의 유방암의 시작이었습니다. 드디어, 2014년 11월 건강검진을 갔습니다. 유방암을 보시는 선생님께서 뭐 불편한 것 없으시냐고 먼저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오른쪽 유방에 딱딱한 것이 잡힌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말에 황급히 살피시더니 모양이 좋지 않다고 정밀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설마 했는데 역시나 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정밀검사 받아보래"라고 말하면서 울음이 터지더라고요. 그 길로 남편은 초음파 CD와 진료의뢰서를 받아 성빈센트병원에 연락을 했습니다. 유방암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서 말씀을 나누니 초음파 상의 모양으로 봤을 때 암일 확률이 80%가 넘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바로 정밀 검사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정밀검사도 아프더군요. 이것이 저의 긴 아픔의 시작이었습니다. 암이라는 확진을 받고 11월, 제 나이 45세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1기라는 말에 혹시 항암 치료는 패스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의사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저의 희망은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함암 6차 ( 각 차시 2set씩, 총 12번 ), 28회 방사선치료, 3주 간격으로 1년간 표적항암치료, 5년 항암제 복용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1.6cm 크기의 1기라는데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의 판단을 하셨을 거라 믿고 따라야 치료도 잘 될 거라 믿었습니다. 병원에 와 보니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은 많은지, 암 환자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정말 병원도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더군요. 여러분, 건강은 큰 축복입니다!

 이제 항암 치료 이야기 좀 할까요? 항암 1차는 기본 체력이 있어서 견딜 만 했습니다. 2차가 들어가기 전에 가슴에 포트를 꽂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혼자서 포트를 꽂으러 들어가는데 참 무서웠습니다. 부분마취를 해서 소리는 다 들리지, 힘주어 몸 속에 포트와 선을 쑤셔 넣는데, '아~ 우리 엄마도 이런 과정을 다 겪었는데 힘들다는 말씀 한 마디 안하셨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눈물이 줄줄 흐르더군요. 그러면서 이제 웃을 일보다 이렇게 울 일이 더 많아 지겠구나. 라는 생각에 많이 슬펐습니다. 매 번 포트에 바늘 꽂는 것도 큰 공포 중의 하나였습니다. 덜 아프게 한 번에 꽂아주는 간호사님이 오시면 너무 반갑고요, 들어오면서 저 해달라고 눈짓을 하지만 다른 간호사님이 눈치도 없이 바늘 들고 달려오십니다. 으~ 저 간호사님 주사는 진짜 아픈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싫다고 거부할 용기도 없으니까요. 그냥 눈 딱 감고 덜 아프기만을 기원합니다. 그렇게 병 3개를 맞으면 하루가 지납니다. 3병 맞는데 8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이제는 빨간색 병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약 냄새만 맡아도 토가 나옵니다. 심지어는 병원 화장실의 손 씻는 비누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어집니다. 참 기나긴 저와의 싸움입니다. 그래도 같이 항암 하는 친구들 ( 다 나이는 다르지만 어느새 친구입니다 )이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서로 싸온 점심과 과일도 나눠먹고, 울렁거리는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항암친구들 없이 저 혼자 견뎌야 했다면 6차까지의 긴 시간이 악몽 같았을 것입니다. 너무 고마운 친구들. 1차를 일주일 간격으로 2set 하고 나니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더군요. 머리 감을 때마다 뿌리도 없이 빠지는 머리에, 울지 않고 머리를 감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정말 무섭게 빠지더군요. 그렇게 3번 머리 감으니 저의 모습은 반지의 제왕 골룸이 되더군요. 이젠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머리를 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두건의 쇼핑이 시작되었습니다. 옷 쇼핑처럼 또 다른 재미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이런 쇼핑하실 일이 없기를 진심 바랍니다! 그렇게 3차까지 항암을 하던 중, 남편이 승진과 함께 영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한 번 가면 기본 2년인데. 아이들은 이제 고3, 고1인데. 그 땐 진짜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진짜 너무하시네. 나에게서 다 뺏어 가시는구나. 직장 그만두게 해, 남편 내려가게 해, 아이 고3이야, 정말 나에게 왜 이러실까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오직 저만 신경 쓰고 편하게 쉬어보라는 주님의 뜻이었네요. 그걸 모르고 원망했으니 주님이 조금 억울했겠습니다. 호호. 항암 중인 부인을 두고 내려간 남편도 맘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올라오는 금요일에 운동 겸 천천히 걸어서 마중 나가면 반갑게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손길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미안함, 안쓰러움 등등의 감정이 섞인 그 손길에 저의 아픔도 행복으로 바뀌더군요.

 아프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고마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제가 잘 견디어내지 않았을까 싶네요. 뭐든지 다 받아주는 남편, 알아서 척척 해주는 아들들, 당신의 몸도 완전 회복되지 않았는데 전주에서부터 먼 길 마다 않고 항암 때마다 올라와서 돌봐주신 엄마, 수시로 찾아와서 반찬해주고 맛있는 것 사주고 가는 동생, 매일 전화하며 건강 살피시는 아빠, 열심히 반찬 해다 주는 새언니, 매일 저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고 맛난 것 사주던 교회 구역 식구들, 함께 힘내자고 격려해준 항암 친구들, 얼굴 검다고 화이트닝 해주던 마사지 언니 등등 모두의 관심과 사랑으로 항암치료도, 방사선치료도, 표적항암치료도 모두 견딜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제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그럼, 지금 저는 뭐하냐고요? 프롭 테라피로 운동도 하고요, 다시 직장에 들어가서 직장생활 하고요, 신랑 2년 만에 다시 올라왔고요, 두 아들 모두 대학에 들어갔고요, 엄마는 전보다 더 즐겁게 사신답니다. 엄마가 왜 더 즐겁게 사시는 줄 아세요? 그건 엄마가 혹시 다시 재발해서 아프면 제가 절망하고 당신의 전철을 또 밟을까봐 그런답니다. 이게 부모 맘인가 봅니다. 아파 보니까 아파서 부모님 걱정시키는 것만큼 큰 불효는 없더라고요. 수술 받으러 입원하던 날 몰래 우시던 아빠의 눈물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지금 저 이만큼 건강해졌습니다.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당연한 것들은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깨닫고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환우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여 모두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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