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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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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브론즈스토리 수상작 [선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058
첨부파일



선물



송금자







2015년 5월 11일 밤 여덟 시, 나는 미국 LA행 비행기를 타기로 예약이 되어있었다. 미국은 처음 가보는데다 한달 간 서부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나는 신이 나고 즐거웠다. 더구나 경비는 부자인 친구가 다 책임지기로 해서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건강하고 좋은 때였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나는 미국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야했다.미국 여행이 결정되고서 여행 전에 병원에 가서 체크할 문제가 있었다. 몇 해 전부터 가끔 유방통이 있었다. 마치 전기가 찌르르 흐르듯이, 혹은 작은 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 하루나 이틀, 간헐적으로 그런 통증이 왔다. 통증이 올 때를 헤아려 보니 생리주기와 비슷해서 단순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여행을 앞두고는 그 전과 달리 며칠 간 통증이 계속되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혹시 심장의 문제라면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이 기내에서 닥터를 찾는다는 방송을 하는거 아닌가 장난스러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출발 전에 병원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심장의 문제인가 싶어서 동네의 내과를 찾아갔다. 동네 병원의 내과의는 심장 문제가 아니다, 심장은 이런 식으로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 산부인과로 가보라고 했다. 다시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보는데 그때부터 상황이 이상스럽게 전개되었다. 동네 산부인과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 병원으로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보라매병원으로 간 나는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조직 검사를 받았다. 미국행 출발 일곱 시간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보라매병원의 초음파 담당의는 조직검사 결과도 나오기 전인데도 미국에 갈 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암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의사도, 나도, 간호사도 암이란 말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일주일 후, 주치의가 정해지고 조직검사 결과도 나왔다.

​ 2015년 5월 18일, 나는 대한민국이 검증한 공식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4기라고 했다. 우선 종양의 크기가 워낙 컸다.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이 모든 일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이었다. 4기라면 생존율이 너무나 현저하게 낮았다. 나는 절망했다. 죽음이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어이없고 비극적이게도 나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아이는 어렸고 남편은 늙어간다. 나 없는 그들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슬픔이 몰려왔다. 안일한 생각으로 몇 년간 건강검진을 건너뛴 자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왜 내가? 하는 분노감이 타올랐다. 그러다가 다시 절망 속으로 고꾸라졌다. 이 과정은 암환자라면 대부분 동일한 반응의 패턴이라고 한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면서 나는 많은 감정적 소모를 했다. 가족들도 같이 그 터널 속으로 끌려들어왔다. 보라매병원에서의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대 안암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와 후배가 병원을 옮기도록 강권했다. 거기는 집에서 멀어서 여러 모로 불편해서 거절했다. 그나마 병원이라도 가까워야 아이들도 챙길 수 있고 나 자신도 왕래에 불편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너무나 간곡하게 권해서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옮겨야 했다. 그런데 오비이락이라고, 그 해에 메르스가 발생했고 보라매병원에도 부지중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가 병원이 발칵 뒤집어지는 소동이 있었다. 나 때문에 노심초사였던 남편에게는 병원을 옮긴 것이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나의 암은 유방암 3기말이고 전이형이라고 진단이 내려졌다. 그리고 수술 후 항암이라는 스케쥴이 선항암으로 바뀌었다. 6월에 들어서자 항암이 시작되었다. 유방암 환자들에게 공포의 빨간 주사로 불리우는 아드리아마이신, 호스를 타고 주사약이 정맥으로 흘러들었던 그 시간이 생각난다. 항암제가 혈관에 투여 되자마자 온 몸이 나른해졌고 곧 이어 극심한 관절 통증이 시작되었다. 하룻 밤에 10년을 건너 뛴 듯 나는 노쇠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주사 후 몇 시간 만에 종양의 크기가 60%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종양의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 있었고 딱딱했던 종양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반면 호중구 수치가 거의 0으로 떨여져서 그 이후 항암을 할 때 마다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해서 호중구를 높이는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암환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탈모와 오심, 구토도 뒤따랐다. 다행스럽게 항암 휴유증이 큰 편은 아니라서 그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아드리아마이신 주사 4회, 탁솔 주사 8회 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허셉틴 1년 처치를 받았다. 수술 부위가 아물고 회복이 되자 35회 방사선 처치. 이 모든 과정은 나로서는 극한의 경험이었다.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 그리고 극심한 체력의 저하와 근육 손실로 주부로서의 일상생활은 다 접어야했다. 당사자인 나만 아니라 가족들이 많은 희생과 고생을 겪었다.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나는 수시로 나에게 말했다. 이건 과정이야, 참을 수 있어, 다시 회복되고 삶은 계속 될거야, 살아야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당시에는 마치 주문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읊조림 덕분에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달랬다. 나는 엄살이 심한 사람이다. 아마도 알고서 그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면 참아내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암 수술 후 3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항암 후유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여전히 말초신경염으로 나는 걸을 때 마다 불편하고 추운 날은 고생스럽다. 수술한 왼편 임파 때문에 왼팔 쓰는 것이 불편하고 날이 굳으면 수술 부위가 칼로 베듯 쑤실 때도 있다. 체력은 암 발병 전의 약 70%에 그치는 것 같다. 전에 없었던 불편들이 수시로 그 모양을 바꾸어 가며 나를 괴롭힌다. 유방 복원 수술을 받지 않았으므로 옷을 입을 때면 절제한 왼편 가슴 때문에 난감한 경우도 허다하다. 여성으로서 이것도 고통이라면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살아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때로 가슴 벅차게 좋고 행복하다. 또한 내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들이 그렇고 친구들이 그렇다. 그리고 나의 주치의가 그 누구보다 그럴 것이다.

암을 지나 오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은 최소한 교통사고로 불시에 죽는 사람들 보다는 더 낫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고 이별을 연습할 시간이 있다. 항암 하면서 사귄 열 살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7년 투병 끝에 재작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면서 이 말을 하곤 했다. 암환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찾아보면 좋은 것들도 있다. 암이 꼭 불행한 것만도, 또 반드시 죽는 것만도 아니다. 비관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미리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경향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을 마주했을 때 잘 견뎌보자는 투지를 가졌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담백하게 그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항암할 때에도 상황에 몸을 맡겨 버리고 묵묵하게 참아냈다. 이를 견디지 못하여 항암 1회 만에 자살한 사람을 알고 있다. 참 비극적인 이야기다. 암을 앞두고 자신만만할 것도 아니지만 두려움에 무너져서도 안된다.

​ 자신을 믿고 시간을 믿으면서 견디면 또 견뎌진다. 친한 선배 언니는 항암하면서 굶어 죽는 사람 없다는 매우 전투적인 격려를 해주었다. 먹으면 살고 견디면 이긴다. 또한 의료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한다. 주치의의 모든 처치 과정을 신뢰하고 따라야한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여러 가지 건강식품을 선물로 주며 권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차가버섯등 항암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종류의 건강기능식품들을 보내주었다. 또한 대체의학을 권한다. 살고 싶은 욕심에 이런 말들에 혹할 수 있다. 식품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늘 오남용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이를 금하고 말린다. 이런 오더에 환자는 반드시 순종해야한다. 주치의를 신뢰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환자가 되어야 한다. 의료진과의 관계가 신뢰에 기초해 있어야 환자도 행복하다. 가치관의 문제이겠지만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삶의 가치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후회가 없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죽음을 면전에 두고 있으니 죽음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절실해졌다. 단순한 연명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까 고민을 하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이런 질문이 절실하다는 것을 건강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참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점차 그 답이 자명해졌다.

​ 사랑!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의 방향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불편했던 관계들을 회복하고자 했다. 우선적으로 시부모님. 나는 꽤 오래 그 분들과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 분들이 준 상처를 보듬고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보니 그 분들도 피치 못한 사정들이 있었으리라 이해가 되고 딱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나의 교만한 마음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했다. 죽어서도 욕을 먹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는데 마음을 바꾸자 관계가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이후 시어머니는 급하면 날더러 딸이라고 하신다. 그 분 마음에 나는 더 이상 불편한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 된 것이다.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가 물을 때 사는 날 동안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고 한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나도 그랬다. 그래서 남은 날 동안 되는 대로 내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하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고 문병차 암병동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어느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날카롭게 보였다.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겠는가? 나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 전이라면 언감생심, 내가 어떻게 그런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겠는가?

​ 저는 4기였습니다, 이 한 마디가 그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보았다.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말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현재 나는 6개월 마다 검사를 받고 계속 관찰 중이다. 운동도 하고 햇볕도 많이 쬐려고 노력한다.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날마다 새로 돋는 초록잎들을 만난다. 나도 먹고 길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눠준다.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관악산을 또 얼마나 웅장하고 멋진지! 살아있다는 희열이 벅차 오를 때가 많다. 눈 부신 삶이다. 그럼에도 병상에 누워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아픔을 기억한다. 형편이 되면 그들을 찾아가 자원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 결론적으로 암은 치명적인 질병이고 개인에게는 돌이키기 어려운 고난이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환자들이 치유를 받는다. 완치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고비고비 환자 개개인에게 딱 맞는 적절한 처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 나라 의료환경은 세계 최고이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도 유방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았는데 그 시스템이 얼마나 느리고 서툰지 환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

​ 그러니 환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의료진을 신뢰하고 자신의 할 일, 예를 들면 먹어야 할 때 잘 먹으려고 애를 쓰고 쉬어야 할 때 잘 쉬고 운동해야 할 때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후배 암환자들에게 꼭 이렇게 말한다. 잘 견디면 좋은 날이 오더라, 더 많이 사랑하고 웃어라, 인생은 매 순간이 다 찬란하더라.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암으로 고통하고 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동병상련, 같은 길을 걸어온 내가 따뜻하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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