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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역대 수상작

제2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실버스토리 수상작 [동생과 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조회수
2,297
첨부파일



동생과 나



박진희







맞벌이 부모님 덕분에 동생과 나는 방학이면 어김없이 외갓집에 맡겨졌습니다. 24년 전 겨울방학 어느날이 였던 것 같습니다. 화장실이 급한 동생은 내 팔소매를 잡고 사정 했습니다.

"언니. 같이 가주면 안돼? 나 무서워"
"싫어! 겁쟁이. 이런대도 혼자 못가냐?"

외갓집 화장실은 밖에 있어 한밤중에 다녀오기엔 험하고 무서운 곳 이였습니다. 난 한번에 매몰차게 거절해 버렸습니다. 부모님이 안계신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동생은 대문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방학 내내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칠칠맞고 조심성이 없다고 혼나겠지.'

하며 못된 마음을 키워 나갈 때 쯤 동생이 입학예정인 중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의고사에서 전체1등을 해서 입학식때 대표로 선서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호들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동안 빨리 나아야한다면서 사골을 사다가 매일 끓여 먹이고 집안일은 절대금지이며 세수도 엄마가 대신 시켜줄 정도로 왕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안일은 소나기처럼 나에게 쏟아졌고 혹시라도 동생이 가방이라도 들 것같으면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내가 호출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직 칼바람이 채 끝나지 않은 계절의 시작에서 분주한 입학식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재학생 무리의 중간에 서서 단상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 앞에 서 있는 애 니동생 맞지?"
"그러네. 이번에 입학생들 중에서 1등으로 들어왔대"

옆에서 친구들이 아는 체 합니다. 대꾸조차 귀찮아 그냥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앞줄 가장자리에서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드디어 입을 땟습니다.

"나 때는 오지도 안더니.."

동생과 나는 2살 차이입니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게 신기할 정도로 우린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릴적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걸 좋아하고 활동적이였다면 동생은 집에서 인형놀이처럼 혼자서 하는걸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자매라는걸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외모도 달랐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모습은 뽀얀 얼굴에 큰 눈. 동글동글 생긴 코에 웃을 때 마다 양쪽 뺨에 야무지게 들어가는 보조개가 있었습니다. 난 항상 궁금했습니다.

'내볼엔 단 하나도 없는 보조개가 왜 쟤볼에는 두 개가 있는거지?'

학창시절에도 나는 수영, 자전거 등 운동을 좋아했고 동생은 앉아서 책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 눈에는 책도 좋아하고 깔끔한 성적표를 가지고 오는 동생을 더 흡족해 하셨을 겁니다.

저는 항상 생각했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진짜 안 아픈손가락도 있고 살짝 스치기만해도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손가락도 분명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24년 후. 그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내 나이 마흔, 동생은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며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생이 왠일인지 주말에 놀러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모가 맛있는 초코케잌을 사왔다면서 딸 아이는 무척이나 행복해 했습니다.

"철들었네. 먼저 이렇게 언니네도 놀러오고."
"언니. 나 할말이 있어."
"왜? 애인이라도 생겼어?"
피식 웃기만 할뿐 한참을 생크림만 뒤적이던 동생이 입을 땟습니다.
"병원 다녀오는 길이야. 나 유방암3기래"

순간 본인의 이야기를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동생의 표정을 살피려 서둘러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살면서 누구에게 해를 입힌적 없이 착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아이인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왜 하필 동생 머리에 떨어졌는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초코케잌과 함께 먹으려 내놓았던 커피는 그대로 테이블에서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말들이 쏟아져 한동안 아이가 흘린 빵조각을 주시하며 물티슈만 만지작 거렸습니다. 무거워진 내 입에서 간신히 말 한마디가 세어 나왔습니다.

"죽는건... 아니지?"
"다른곳에 전이도 안되었고 젊은 나이라서 치료 받고 수술하면 나을 수 있대. 언니한테 처음 얘기하는 거야."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이 나오기 까지 혼자서 병원을 다니며 피검사. 조직검사며 CT쵤영을 해서 알게 된 과정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오히려 내 어깨를 토닥이며 돌아선 동생의 뒷모습을 본 후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 괜찮아?"
딸아이는 슬금슬금 무릎을 파고 들어와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짱구 만화 더 볼까?"
아이에게 리모콘을 건내고 서둘러 유방암에 대한 정보를 살피려고 핸드폰을 들었지만 눈이 자꾸 흐려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일 후 식탁에서 요란한 진동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니. 같이 가주면 안 될까. 나 좀 무서워."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왔습니다. 눈앞이 안개가 낀것처럼 뽀얘지고 귀도 멍해져왔습니다. 20여년전 동생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듯 했습니다. 그때 그 어린 동생의 간절한 목소리가 지금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아 몸이 살며시 떨려왔습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밖에 나오자 맑은 하늘 선선한 바람이 유난히 짓궂게 느껴졌습니다.
서둘러 택시에서 내려 병원6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외래주사실 앞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동생이 보였습니다. 다소 피곤한 표정이였지만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곤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양볼에 보조개는 여전히 예뻣습니다. 얇은 손목에는 바코드와 동생의 이름이 적혀있는 팔찌가 걸려있었습니다. 어느새 그 손이 내 손등을 덮었습니다.

"고마워. 언니."

항암주사를 처음으로 맞는 날. 언니인 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렷을 때 외갓집 화장실 동행을 부탁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언니를 다시 한번 찾아준 동생이 너무나도 고맙고 마음 한편이 아파왔습니다. 분주하게 걸어온 간호사는 동생을 데리고 주사실로 향했습니다. 주의 사항 안내 종이를 건네며 3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똑..똑..'
수액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질때마다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넌지시 동생의 얼굴을 살핍니다.
"언니랑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넌 내가 좋아?"
"그럼, 세상에 언니를 안 좋아하는 동생이 어디 있어?"
"나는 너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진짜? 몰랐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유방암인줄도 모르고 있었지."
"................"
"미안해."
"아니야 언니. 근데 유방암은 초반에 거의 증상이 없어서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대. 언니도 시간되면 한번 검사 받아봐. 이제 40대잖아."
"그래. 알겠어."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때론 우스개 소리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며 3시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름이 쓰여져 있던 손목팔찌는 사라지고 반창고가 덩그라니 붙어 있는 동생의 하얀 팔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니랑 이렇게 많은 이야기 한게 처음인거 같아. 근데 말야 기분이 되게 묘하다. 내가 힘들 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몸이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어. 내가 아픈게 식구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혼자 오긴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까 몸이 떨려오는거야. 연락하길 잘했다. 몸 속 종양이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어."

주사실에서 나온 둘은 천천히 걸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갈 때 무심히 불던 바람과 햇볕이 지금은 꽤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동생은 앞으로 3번의 항암주사를 더 맞고 종양의 크기에 따라 수술시기와 적절한 치료 방법을 의사와 의논해야 합니다. 아직 완치까지는 갈길이 멀지만 한단계 한단계 올라갈 때 마다 진심어린 가족의 응원과 관심이 있다면 유방암이라는 숙제가 결코 험난한 길만은 아니란 걸 직감했습니다.

"다음에도 언니 불러라."

동생은 큰 눈으로 윙크를 합니다. 문득 기억을 더듬어 보니 외갓집 문지방에 넘어져 있을 때도 동생은 나를 찾으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언니가 옆에서 힘이 돼줄께. 우린 헤쳐나갈 수 있어! 사랑해.'

늦은 봄 흐드러지게 핀 핑크색 장미꽃을 함께 보며 우리는 천천히 걸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