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병문안
이지헌
지그시 눈을 감고
갈색 봉지 속 항암제를 커피처럼 음미하던 그녀가
내게 건넨 말
가을도 탈모 중이야
똑똑 떨어지는 주사액을 따라
그녀의 사른 가슴 안으로 들어간다
우수수 암세포의 소멸을 바라며
주먹을 풀었다 쥐었다 하다
받아 든 커피를 흘렸다
두툼했기에 없는 줄 알았다던
빠트린 한 장의 대본
바로 위기 대목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저 관록
막 웃다가 금세 눈물 보이는 흐린 위로도 모자라
한숨 한 움큼 몰래 돌아서 쉬는데
그녀가 나무라듯 내 손을 끈다
바닥을 찍은 나무의 손바닥을 봐
낙엽은 끝이 아니야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오르고 올라 박수갈채하자는 바닥에서 맞잡은 손이야
창 앞에 선 아픈 시인의 말
그 투명한 방백에
한 무리의 낙엽이 바람에 일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