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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스토리 공모전

역대 수상작

제1회 핑크스토리 수기 공모전 - 브론즈스토리 수상작 [엄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8.10.
조회수
2,132
첨부파일



엄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강혜미







저희 어머니는 5번의 암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돌연변이 세포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 생성을 억제해주는 유전자 중 하나가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방사선, 항암치료 등 안 해본 치료가 없습니다. 최근 병원에서 암 확정 판정을 받았을 땐 의사선생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일반 여성이 52년을 살면서 5번의 암 치료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그 중 제가 어렸을 적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 저희 어머니는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다행히도 본인의 자가진단으로 멍울이 잡히는 것을 발견하여 유방암 초기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도 어머니가 병원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으며, 모든 치료 후 퇴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마의 긴 머리가 없었습니다. 오른쪽 가슴에는 길쭉하게 꼬맨 상처가 남아있었으며 유방 한쪽이 사라졌습니다. 너무 어린 나머지, 어머니가 아팠다는 것 보다 내 엄마의 모습이 충격이였고,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이 먼저라니 정말 철이 없었습니다.

 그 해 겨울, 그리고 2년, 3년, 어머니는 대중목욕탕을 좋아하시면서도 단 한번도 목욕탕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른쪽 유방이 없는 모습으로 딸과 함께 목욕탕을 갔다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딸에게 더 큰 상처를 줄까 걱정이 되어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용기 내어 어머니에게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엄마, 우리 목욕탕 갈까?" 어머니께서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는데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유방이 없는 것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대중목욕탕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없지 않나 싶어 제안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초리, 수군거림 쯤이야 당당하게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제 어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엄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용기 내준 저에게 아직도 많이 미안해하시고 고마워하십니다. 아직도 대중목욕탕을 가면 남이 볼까 가슴을 수건으로 가리시고, 남의 시선에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자리를 찾으십니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머니가 저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배려하고 싶은 것을 굳이 막고 싶지 않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얘기를 합니다. "엄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다만 남들보다 약하고 아파서 가슴 한 쪽이 없는 것뿐이야"

 어머니는 현재 유방암 치료 후 10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판정 받고 난 3년 후 다시 암이 발병하여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2년 전 쯤, 남들보다 암이 자주 발병되는 것을 의심스러워하던 의사선생님께서 조직세포를 떼어 연구 실험을 진행해보자고 제안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답답한 마음에 흔쾌히 동의를 하셨고, 2년 후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생성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일부가 고장이 나서 남들보다 암세포가 쉽게 생긴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라는 사실보다 저를 먼저 걱정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내 딸도 내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저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판정이 났습니다. 물론 건강한 유전자를 받으면 참 좋겠지만 이미 이렇게 판정이 난 이상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예방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어머니를 위로했습니다. 그래도 본인 때문에 내 자식까지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시는데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도 언젠간 유방암과 난소암에 노출될 수 있으며, 남들과 비교 했을 때 암이 발견 될 확률이 60퍼센트라고 의사선생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고,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본인이, 그리고 가족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예방을 잘 하면 그 확률도 현저히 낮출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잦은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도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는지 세상에 대하여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미 발병이 되었기 때문에, 잘 이겨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방암 환우들이 참 많습니다. 환우들이 많더라도 세상의 인식과 시선은 아직 너무나도 냉정하고 차갑습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유방이 없다는 것은 혐오스럽고 자신과 다른 모습에 놀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는 여성의 상징인 유방이 없다는 사실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수군거림에 더 큰 슬픔과 좌절을 겪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방암으로 고생 하시는 환우분들, 그리고 그 옆에서 마음 고생하시는 가족분들 모두,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은 접으시고 긍정적인 생각과 당당하게 가족들을 위하여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