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권혜원
그대로 머물고 싶었다
시간이 더는 흐르지 않게
지금보다 더 큰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리쬐는 햇살도 살랑이는 바람도
시퍼런 파도 시뻘건 화염에
울렁거리는 내 심장을 위로할 순 없었다
저 멀리 달려오는 버스 한 대
당연한 걸음을 하는 그가
내 가슴을 함부로 방망이질 치는 브레이크 소리
악성입니다
그곳의 햇살이
더욱 따가웠던 이유
살리기 위한 동아줄
햇빛에 달궈진 소견서를 아무렇게나 들고
나는 또 기다린다
5월 어느 오후의 열기
점점 달궈지는 눈시울
뜨겁게 복받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이 순간에도 퍼져가고 있을
몹쓸 세포의 분열
혈관을 따라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마음
심장 저 너머에서
날카로운 결절이 반짝이고
녹아져 내리던 진주는 휘몰아친다
여울져 떠오르는 가족들의 얼굴
버스가 지나간다
발등에 내려앉은 한숨
아까보다 더 쨍한 햇살이
정수리를 쏘아댄다
버스에 오른다
못 박힌 듯 서있던
내가 머문 그곳엔
또 다른 얼굴이 서있다